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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행<2>―춘천 상고대_그리움… 기다림… 아쉬움

입력 : 2011.01.13 07:00 / 수정 : 2011.01.13 08:36

얼음꽃이 피었다 사라지기까지… 단 두 시간

오직 1월, 길어야 2월까지 두 달 남짓 존재하는 풍경이 있다. 춘천 상고대다. 무송(霧淞)이라고도 하고 수빙(樹氷)이라고도 한다. 공기 중에 떠다니던 물방울이 나무에 달라붙으며 하얗게 얼면서 꽃이 핀다. 덕유산 같은 차가운 고산이야 상고대가 하루 종일 갈 때도 있지만, 평지인 춘천 상고대는 찰나(刹那)다. 개화(開花)는 짧다. 피고 지는 데 불과 몇 시간이다. 해가 솟으며 대기를 데우면 꽃들은 다시 허공으로 돌아간다. 허무할 정도로 아쉽다.

물안개와 나목(갨木)이 만나 꽃을 피웠다. 이른 아침 춘천 소양강에 피어나는 얼음 꽃이다. 순식간에 벌어지는 개화(開花) 장면이 아쉬워, 사람들은 그저 카메라를 들이대며 아쉬워할 뿐이었다

1월 춘천에 가야 할 이유가 이거다. 몇 시간을 차로 달려가 그 찰나의 미학을 즐기는 것이다. 눈으로 즐기고, 가슴으로는 마음 아릿한 아쉬움을 즐긴다.

소양호에서 두 번째 다리인 소양5교 아래 둔덕길에 차를 세운다. 오전 6시. 전망 좋은 곳은 이미 사진가들이 점령했다. 하늘에는 아직 별들이 떠 있고, 강변과 강심(江心) 나무들은 여전히 나목(裸木)이다. 기온은 영하 20도.

소양강 상고대는 사진가들에게는 유명한 피사체다. 찍는 위치도 비슷비슷해서 인터넷에 올라오는 사진들도 비슷하다. TV보다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가 웅장하듯, 사진으로 보는 상고대는 직면(直面)하는 상고대의 감동을 십분의 일도 전달하지 못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고대의 개화와 종언 과정을 보지 못한다. 두 번째는 그래서 아릿한 감성, 그러니까 경외심 같은 느낌을 사진은 주지 못한다. 말 그대로 사진은 풍경을 '동결(freezing)' 해버리니까.

일곱시가 지나며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무서울 정도로 양이 많고 생성 속도도 빠르다. 눈앞에서 안개가 강을 가득 메우는데, 조금 아까 벌거벗었던 나무들 몸통에 조금씩 흰 꽃이 피어난다. 그 속도가 너무 빨랐다.

과학자의 눈으로 보면 간단명료하다. 채 얼지 않은 공기 속 물방울, 그러니까 안개가 차가운 나무와 부딪치며 응결되는 것이다. 눈처럼 뾰족뾰족한 결정을 이루며 얼음덩이가 쌓여 꽃처럼 보이는 것이다, 끝.

하지만 과학이 여행인가. 분명히 조금 전 풍경과 180도 다른 비경이 눈앞에서 '창조'되는 판에 과학을 생각할 겨를은 없다.

1월 춘천에 가면 물안개를 만난다. 물안개 너머 나무들은 눈꽃을 가득 피웠다. 한순간 피었다가 한순간 사라지는 덧없는 꽃이다.

감탄을 하며 한참 바라보다가 '아차 이거 곧 없어지지' 하며 셔터를 누르는 단순한 행동이 반복된다.

오전 8시쯤 '소양강댐이 발전을 시작해서 물을 대량 방류하오니 강 주변 주민은 바깥으로 나오시라'는 방송이 곳곳에서 들린다. 안개는 더 짙어지고, 개화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산 너머에서 태양이 솟는 기미가 보였다. 푸르던 대기는 온화한 붉은빛으로 바뀌었다. 순백색 무송들은 분홍색 화장을 하고 반짝이기 시작했다. 짙은 물안개 틈에서 정교한 눈꽃들이 출렁였다. 잠에서 깬 기러기들이 뒤편 논에서 날아와 그 위로 솟구쳤다. 이윽고 태양이 머리를 내밀었다. 찬란했다.

개화의 종말은 그렇게 찬란했다. 두 시간 정도 피어 있던 꽃들이 눈앞에서 소멸하기 시작했다. 그 두시간 동안 사람들은 또 다른 상고대 포인트인 소양3교로 달려가 또 사진을 찍는다. 5교 아래의 아담한 풍경과 달리 웅장하다, 이곳은. 저만치 아파트촌이 안갯속에 가리고, 강심에 있는 섬들이 온통 희디희다. 5교에서든 3교에서든, 상고대는 태양의 고도를 스스로 알아맞히며 인간이 눈치 채지 못하는 느린 속도로 녹아내려 허공으로 복귀하고 있었다. 중무장을 하고 사진을 찍던 한 여자가 중얼거렸다. "어떡해, 어떡해…." 더 이상 사진을 못 찍는다는 기술적인 아쉬움만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했다.

그게 그리움이다. 춘천에서 태어난 시인 이승훈이 썼듯, 상고대는 '네가 돌아올 때까지 가방이나 뒤지고 연필이나 깎고/ 가슴 속에 귀뚜라미나 기르고/ 하루 종일 몸에서 열이 나고/ 빌어먹을 너는 돌아오지 않을 거다'('돌아오지 않는 법?'中). 이상, 1월 춘천에 가야 할 이유 중 하나에 대한 설명이었다. 소재는 상고대, 주제는 그리움에 대하여.

▶상고대 촬영 TIP.

상고대는 매일 생기는 현상이 아니다. 몇 가지 상고대의 '징조'를 알고 가면 만날 확률이 굉장히 커진다.

①눈이 내린 다음 날 혹은 그 다음 날

②그날이 엄청나게 추울 것. 반드시 춘천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③오전 6시 30분쯤에 물안개가 피고, 상고대가 맺히기 시작한다.

④소양 3교든 5교든 어느 정도 감상을 했다 싶으면 미련없이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것.

④촬영은 일반 '똑딱이' 카메라도 줌 기능이 있으면 가능. 렌즈 교환식 DSLR 카메라는 70-200㎜급 줌렌즈가 필요하다. 그보다 화각이 넓은 렌즈는 멀리 있는 상고대의 정교한 모습을 찍기가 어렵다.

⑤보너스: 디지털카메라라면 화이트밸런스를 임의로 조절해본다. 실제보다 따뜻한 '붉은 색조', 실제보다 차가운 '푸른 색조'를 임의로 만들 수 있다. 

여행수첩

①손수운전: 서울춘천고속도로 춘천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춘천IC에서 나와 춘천교대 방향 직진→석사사거리 화천·국립춘천박물관 방향 우회전→박물관삼거리에서 강원대학교 방면 좌회전→후평사거리 춘천IC·남춘천IC·정부합동청사 방면 우회전→동광오거리 정부합동청사 방향 왼쪽 도로→강 따라가면 소양3교 사거리에서 직진→사거리 나오면 양구 방향 좌회전, 소양5교. 다리를 건너자마자 작은 길로 우회전할 것. 우회전 뒤에는 강변에서 좌회전. 주차는 길섶에 일렬로 할 것. 길이 얼어붙어서 교행이 어렵다. 소양3교 주변은 주차공간이 부족하니 주의.

②대중교통: 작년 말 개통된 경춘선 전철로 춘천역 하차. 소양5교는 버스나 택시 이용. 5교에서 3교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린다.

상고대는 이른 아침에만 볼 수 있으니, 새벽에 출발하지 않으면 전날 춘천에 묵어야 한다. 숙소 정보는 춘천시청 공식 관광홈페이지에서 '원래' 검색할 수 있었는데, 관리 부실인지 숙박을 클릭하면 엉뚱한 게 자꾸 나온다. 그 꼴 보고 싶으면 tour. chuncheon.go.kr 클릭. 대신 개인이 만든 www.happycc.com 참조. 각종 정보가 꼼꼼하다. 소양5교는 동면 장학리에 있으니 숙소 선택에 참고할 것.